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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은 붓다로 살아가는 그 자체이다지금 여기에 있는 자기 자신의 행위로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창조된다

지리산 실상사 회주이며 (사)한생명 이사장, 그리고 인드라망생명공동체 상임대표인 도법스님은 2019년 10월 22일(화) 부전선원(선원장: 안국스님)이 운영하는 한국참선불교대학원의 수강생들에게 ‘붓다로 살자’란 주제로 법문을 하였다. 이하는 이날 행한 도법스님의 법문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참선불교대학원에서 도법스님과 동참한 수강생들
참선불교대학원에서 법문하는 도법스님

도법의 스님의 법문은 현익채 무심선생이 수강생을 대표하여 ‘붓다로 살자’란 발원문을 읽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신기하고 신기하도다. 어리석음에서 깨어나 보니 사람이 그대로 오롯한 붓다이네.
안타깝고 안타깝도다. 어리석음과 착각에 빠져 붓다인 사람이 중생노릇하고 있네.
한심하고 한심하도다. 언제나 분주하고 고달프게 소를 타고 소를 찾고 있네.

내 마땅히 중생이라는 낡은 믿음을 버리게 하리. 갈피 못 잡는 헤맴에서 깨어나게 하리.
그리하여 지금 당장 붓다처럼 정신 차린 사람, 평화로운 사람, 정의로운 사람, 자비로운 사람, 행복한 사람, 붓다로 살게 하리.
소박한 사람, 지혜로운 사람, 자유로운 사람, 아름다운 사람, 행복한 사람, 붓다로 살게 하리.”

천지를 진동시킨 붓다의 한 말씀 한 말씀을 간절히 두 손 모아 가슴에 새깁니다. 중생의 아픔을 내 아픔으로 여겨 한 생명 빠짐없이 평화와 행복의 길로 이끌었던 붓다의 고귀한 삶과 정신을 따라 저희들 또한 지금 여기서 거룩한 붓다로 살겠습니다.

본래 붓다인 나는 자연과 사람을 고귀하게 맞이하여 말하고 행동하겠습니다. 진실하게 맞이하여 말하고 행동하겠습니다. 겸허하게 맞이하여 말하고 행동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지금 당장 고귀하고 진실하고 겸허한 사람이 되어 함께 행복한 사람, 붓다로 살겠습니다.

본래 붓다인 나는 자연과 사람을 따뜻하게 맞이하여 말하고 행동하겠습니다. 평등하게 맞이하여 말하고 행동하겠습니다. 정의롭게 맞이하여 말하고 행동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지금 당장 따뜻하고 평등하고 정의로운 사람이 되어 함께 행복한 사람, 붓다로 살겠습니다.

본래 붓다인 나는 자연과 사람을 평화롭게 맞이하여 말하고 행동하겠습니다. 소탈하게 맞이하여 말하고 행동하겠습니다. 소박하게 맞이하여 말하고 행동하겠습니다. 그리하여 지금 당장 평화롭고 소탈하고 소박한 사람이 되어 함께 행복한 사람, 붓다로 살겠습니다.

나와 너, 우리 모두가 붓다임을 한시도 잊지 않으며, 온 세상이 생명평화공동체가 되는 그날까지, 붓다로 살기 위해 쉼 없이 정진하고자 하오니 거룩한 삼보이시여, 저희들의 굳은 서원이 이뤄지도록 지켜주소서. 나무석가모니불 나무석가모니불 나무시아본사 석가모니불

발원문 낭독이 끝난 후 도법스님은 법문에서 사람들이 참선, 기도, 능엄주 같은 진언 등을 열심히 하지만 스님자신의 경험담 또는 다른 사람의 경험담에 따르면 불교는 해보니 너무 복잡하고 어렵다는 얘기들을 한다고 하였다. 부처님이 불교를 펼친 이유는 인생의 짐을 덜고 사람이 보다 자유롭게 살도록 하기 위한 것인데 지금의 불교공부는 현재 가지고 있는 짐에다 또 하나의 짐을 더 얹어놓는 것과 같다고 현실을 진단하고 또 한 안거에 약 3,000명의 스님이 모여 1년, 10년, 20년, 30년, 40년, 50년, 심지어 60년을 참선을 한 경우도 있다고 소개하였다. 

참선에 대하여 그 당시 배운 것은 인생에 대한 시원한 해답을 얻으려면 확철대오 즉, 궁극적으로 깨달음을 얻어야 하는데 그것은 화두를 들고 참선을 하는 것이고 어느 정도하여야 하는가는 용맹스럽게 정진하여 오매일여의 경지까지 나가는 것이고 그러면 거기에서 깨달음을 얻게 되고 인생에 대한 해답을 시원하게 알게 되어 자유자재하게 활달하게 살 수 있는 것이었다고 하였다. 참선수행의 목적 자체가 깨달음이고 깨달음을 얻지 않으면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고 하면서 그런 믿음을 가지고 스님들이 오랫동안 참선을 하였지만 현재 깨달았다고 하는 사람이 나오지 않은 것이 한국불교의 문제라고 하였다.

그렇게 일생을 걸고 하였는데도 깨달아지지 않았다면 어찌 되는 것이며 이것은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고 만일 이렇게 불교가 배우기 어려운 것이라면 지금까지의 선배 혹은 동료까지는 모르겠지만 후배들에게 불교를 공부하라고 할 수 있겠느냐는 현실적인 고민을 하게 되었다고 하였다. 교리를 공부하자니 양이 너무 많고 또 복잡하여 경전공부 대신에 부처님을 잘 파악하고 알아야만 불교를 이해하겠다는 생각으로 인간 석가모니부처님이 일생을 어떻게 살았느냐를 알기 위한 공부를 하게 되었다고 그 소회를 밝혔다. 

부처님은 자신이 경험한 것만 얘기를 하지 경험하지 않은 것은 얘기를 하지 않는다고 하였다. 다시 말하면 여기 참석한 사람 모두가 목이 마르면 물을 먹고 물을 먹으면 시원해진다는 것을 100% 동의하는데 그것은 참석자들 모두, 특별한 사람이 아닌 모두가 경험한 것이기 때문이라고 하면서 마찬가지로 불교란 이렇게 부처님이 경험한 것을 기술한 것이기에 어렵고 복잡한 것이 아니라 단순하고 명료한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3조 승찬대사는 신심명에서 ‘참된 진리는 어려운 것이 없다.(至道無難)’라고 하였고 어느 선사는 ‘참된 진리를 깨닫는 것은 세수하다가 코 만지기다.’ 라고 말한 것과 같이 부처님이 말한 깨달음이란 결코 복잡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 아니라 참으로 단순하고도 명료한 것이라고 하였다.

부처님께서도 ‘나의 가르침은 함께 이야기를 나눌 경우 말을 못 알아듣는 사람은 빼고 말을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바로 즉각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또 이해되는 대로 적용을 하여 보면 그 자리에서 바로 실현이 되고 곧 증명이 된다.’고 설하였다고 하였다.

우리의 현실에서 불교는 10년, 20년, 30년을 하여도 이해되지 않는 것이라는 문제의식 때문에 이런 불교를 정리하는 것이 도법스님 자신에게는 하나의 화두이었다고 하였다. 2000년대 조계종의 화쟁위원회를 맡으면서 고우스님, 무비스님, 지안스님, 혜남스님 등과 같이 토론할 때 3달정도 공부하면 불교를 이해할 수 있도록 정리하자고 하여 거기서 얘기되었던 것들을 압축하고 압축하여 만든 것이 ‘붓다로 살자’ 발원문이라고 소개하였다. 도법스님 자신은 이 발원문은 불교의 전부라고 생각한다며 다만 불교 지식을 늘이려면 이것으로 충분하지 않지만 불교로 살아가는 삶이 목적일 때는 이 발원문 하나로 충분하다고 강조하였다. 이런 방법으로 압축하여 만든 경전의 대표적인 것이 반야심경이고 또 의상스님의 법성계라고 예를 들었다.

이 발원문도 녹이고 녹여 만든 것이지만 자신이 만든 것은 아니고 자신은 정리만 하였을 뿐이라고 설명하였다. 또 발원문의 내용이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냐고 수강생들에게 반문하였다. 발원문을 정리할 때 참고한 것은 경전의 내용보다도 신과 같은 부처님이 아닌 우리와 같이 인간적인 부처님의 삶 자체이었다고 부연 설명하였다. 우리는 신과 같은 부처님, 신통 자재한 부처님만을 알고 있지만 식중독으로 고생한 부처님, 탁발하러 갔다가 탁발을 하지 못하여 굶은 부처님, 코삼비에 있는 제자들이 편을 갈라서 싸움을 계속할 때 속상하여 다른 곳으로 간 부처님과 같은 인간적인 부처님을 잘 알고 있지 못하다고 하였다.

우리는 불교를 통하여 뭔가를 이루고자 얻고자 하는데 그 얻고자 하는 것이 너무 인간적이지도 않고 현실적이고 않고 보통 사람들이 할 수 없거나 이룰 수 없는 것, 매우 특별한 것, 매우 대단한 것, 신비하고 불가사의 한 것, 위대한 것, 대단히 심오하고 거룩한 것, 청정한 것 등이라고 현실을 설명하였다. 우리들이 이런 것들을 추구하는 한 불교공부는 아무리 해도 결코 이룰 수 없는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지금 얘기 하듯이 부처님에게는 무슨 신비한 것, 불가사의한 것, 특별한 것 등이 없다고 하였다. 경전에는 신비한 얘기들이 있어 우리는 그것만을 보고 생각하고 있는데 결코 부처님에게는 그것만 있는 것이 아니고 매우 인간적이고 현실적인 모습의 부처님이 있다고 설명하였다. 부처님은 신이 아니고 훌륭한 선생님, 아주 좋은 훌륭한 친구, 아주 좋은 훌륭한 이웃이라고 정의하였다. 선사들은 부처님을 이런 방식으로 단순명료하게 설명하였다고 하였다.

부처님은 어디 앉아서 법문을 하였을까? 범접할 수 없는 부처님, 경외심으로 존경하고 받들어야 하는 부처님, 무언가를 빌고 간청하는 대상이 되는 부처님, 우리와는 특별히 다른 부처님이어서 사자좌에 앉아 법문을 하였을까? 그런 것은 전혀 아니며 인간 석가모니 부처님은 참선할 때는 풀방석에서, 법문할 때에는 걸어 다니다가 마을회관 같은 그런 적당한 장소에서 그냥 하였다고 하였다. 우리의 공부는 신이 된 부처님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부처님을 대상으로 공부를 하여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그러면 ‘부처님은 어떻게 생겼지? 부처님은 어떻게 살지?’라는 궁금증에 대한 대답으로 실상사의 극락전에 있는 주련으로 대신하였다. 즉, “머리는 하늘을 향에 있고 두 발은 땅을 딛고 있네. 눈은 옆으로 놓여 있고 코는 아래로 곧게 되어 있네. (頂天脚地 眼橫鼻直 정천각지 안횡비직), 밥이 오면 입을 벌리고 졸음이 오면 눈을 감네(飯來開口 睡來合眼 반래개구 수래합안)” 란 주련의 의미는 사람 그대로 부처라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것은 생긴 것도 사는 것도 지극히 인간적이라는 것이며 결국은 우리와 똑같다고 하였다. 그런데 여기에 우리에 다른 것이 있다고 하였다. 그런 내용을 법성계에서는 ‘일념즉시 무량겁(一念卽是 無量劫) 무량원겁 즉일념(無量遠劫 卽一念)’ 즉, ‘한 순간이 영원이고 영원이 한 순간이다’란 말로 시간적으로 완전하다고 표현하며 또 ‘일미진중 함시방(一微塵中 含十方) 일체진중 역여시(一切塵中 亦如是)’ 즉, ‘먼지 하나가 그대로 우주이고 우주가 곧 먼지 하나다’란 말로 공간적으로도 완전하다고 표현한다고 하였다. 그런데 여기에 누가 있는가 하면 지금 현재 몸과 마음을 갖고 있는 내가 있다고 하였다. 이것은 일심동체(一心同體)로, 초기불교에서는 일체법(육근, 육진, 육식 18계)으로 표현하였는데 이것은 ‘내가 곧 우주요 우주가 곧 나’라는 말이라고 하였다.

시간적으로 영원, 공간적으로 무한, 존재자체로는 일심동체인데 이것은 완전함을 얘기한다고 하였다. 주련에 있는 선사의 표현대로 부처도 보통의 인간과 똑같이 생겨 있고 생활도 보통의 인간과 똑같이 하는데 이것이 바로 이 세상에서 가장 완전한 것이고 가장 거룩한 것이고 가장 위대한 것이고 가장 불가사의 한 것이고 가장 신비한 것이며 이것 이외에 다른 것은 없다고 역설하였다.

깨달음이란 이름으로 신비하고 거룩하고 물위를 가는 불가사의한 신통력이 있어 대단하게 보이더라도 그것이 우리의 삶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하면 결코 대단한 것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였다. 부처님은 삶에 필요하고 도움이 되지 않는 이야기는 하지 않았는데 그런 것은 있어도 없는 것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부처님은 '나는 오로지 고통의 발생과 그 소멸에 대하여서만 얘기한다.'고 하였다면서 그래서 진정으로 신비한 것, 진정으로 거룩한 것, 진정으로 불가사의한 것, 진정으로 심오한 것, 진정으로 위대한 것은 무엇이냐면 고통으로부터 벗어나는데 필요하고 도움이 되는 것이라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그것이 비록 신비한 삼매 체험과 같은 것이라고 하더라도 토끼 뿔이나 거북이 털과 같은 말장난에 불과한 것이라고 설하였다고 하였다.

그런데 우리는 말장난, 환상과 같은 거품에 지배 받고 있다고 하면서 이런 거품을 걷어내어야 한다고 말하였다. 불교는 ‘이런 거품을 걷어내자. 이런 환상을 깨자.’라고 말한다고 하였다. 이것을 반야심경에서는 ‘원리전도몽상 구경열반’이라 하고, 무엇이 전도몽상인가 그것은 토끼 뿔과 같은 것, 실제는 있지 않는데 대단한 무엇인가가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지금 내가 두 발을 딛고 있는 공간, 이 현장에서 몸과 마음을 갖고 살아가는 자기 자신이 바로 존재 자체라고 설명하였다. 이것은 ‘머리는 하늘을 향에 있고 두 발은 땅을 딛고 있네. 눈은 옆으로 놓여 있고 코는 아래로 곧게 되어 있네. 밥이 오면 입을 벌리고 졸음이 오면 눈을 감네’와 같이 이것 이외에 다른 무엇이 있다면 그것이 바로 전도몽상이라고 역설하였다. 이것 말고 더 이상 심오한 것이 따로 있지 않고 거룩한 것이 따로 있지 않고 위대하거나 불가사의한 것이 따로 있지 않다고 하면서, 지금 여기의 존재만이 가장 신비하고 가장 위대하며, 가장 심오하고 가장 거룩하며 가장 불가사의하다고 하였다. 이런 존재를 다른 표현으로는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고 하였다.

이것을 알고 살면 그것이 부처의 삶이고 이것을 모르고 살면 그것이 중생의 삶이라고 설명하고 이것을 제대로 알고 살도록 하는 것이 불교라고 강조하였다. 이런 사실을 인정하고 사는 사람과 인정하지 못하고 사는 사람의 차이는 소를 타고 소를 찾는 사람과 소인 줄 알고 소를 탄 사람의 차이라고 하였다. 겉으로 보기에는 소인 줄 알고 탄 사람과 모르고 탄 사람은 똑같지만 소인 줄 모른 사람은 소를 찾기 위하여 밖으로 또 안으로 계속 무엇인가를 찾게 되어 현재의 삶을 투철하게 살 수 없다고 하였다. 소인줄 알고 탄 사람은 현재 필요한 일을 하며 현재의 삶을 투철하게 그리고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다고 하였다.

지금 여기 존재 자체가 최고라고 알고 산다면 어떤 영험이 있을까 그 영험은 첫째 상대비교에 의하여 생기는 열등감이 떨어져 나가고, 둘째는 어떤 상황에 놓인다하더라도 당당하게 살 수 있다고 하였다. 지금 여기 존재 자체를 최고라고 제대로 아는 것을 바로 깨달음이라고 한다고 정의하였다. 당당하다는 말 속에는 그 삶이 자유롭다 여유롭다 평화롭다는 말이 포함되어 있다고도 하였다.

이런 깨달음을 선사들은 자신의 본래 면목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고 표현한다면서 자신의 본래 면복이란 ‘자신이 곧 우주고 우주가 곧 나'고 ‘순간이 곧 영원이고 영원이 곧 순간'이어서 여기 존재하는 자체가 신비이고 기적이고 불가사의라고 설명하였다. 이것을 제대로 아는 순간 우리는 모두 나도 너도 당당해진다고 하였다. 이런 당당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세상을 화엄세계, 극락세계라고 하였다.

이런 것에 모든 사람이 눈을 뜨게 하는 것이 부처님이었다고 의미를 부여하였다. 당당하지 않으면 편을 갈라 치사한 행동을 한다면서 편을 가르면 거기에는 음모가 내재되어 있다고 하였다. 이렇게 당당한 삶을 부처님은 천상천하유아독존으로 표현하기도 하고 본래 부처라는 말로 표현하였다고 하였다.

화엄경에는 ‘잘 몰랐을 때 인간은 업보 중생이지만 제대로 알고 보니 인간이 본래 부처’라고 되어 있다면서 우리나라 큰스님들도 이구동성으로 본래 부처를 강조하였다고 하였다. 한국불교처럼 본래 부처를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는 곳은 세계 어디에도 없을 것 같다고 하면서 본래 부처론이 불교의 진면목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문제는 본래 부처를 계속 주장을 하면서도 지금은 업보 중생이기 때문에 부처가 되어야 한다고 하는 것에 있는데 이런 말에는 분명 잘못이 있다고 강조하였다.

그 대신에 도법스님은 본래 부처이니 부처로 살아야 한다고 주장하였다수행은 깨닫기 위하여 즉, 부처되기 위하여 하는 것이 아니라 부처로 살아가는 것이 수행이라고 역설하였다. 부처란 말 속에는 신비하다, 심오하다, 거룩하다, 깊은 삼매, 완전하다, 불가사의하다 등 온갖 좋은 말이 다 들어 있다고 하면서 화엄경에서는 ‘사물 하나하나가 부처 아닌 것이 없다’고 하였는데 하물며 인간은 말할 필요가 없다고 하였다.

현실에서 우리는 ‘나는 죄 많은 업보 중생이다.’라는 전제하에서 해답을 찾으려고 하니 문제라고 하였다. 또 인간은 행위 하는 대로 그 삶이 만들어지는 존재라고 하였다. 전생에 죄가 많든 적든, 신을 믿든 말든, 사주팔자가 좋든 나쁘든 관계없이 그것은 결국 전생 업보의 노예, 신의 노예, 사주팔자의 노예 등으로 살 것인가이고 그런 노예로 살면 결코 자유로울 수 없고 편안할 수 없기 때문에 주인으로 살아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불교는 한마디로 얘기하면 '종으로 살 것인가 주인으로 살 것인가'란 것이라고 하였다.

내가 사는 대로 내 삶은 만들어지는 것은 주인으로 살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중생의 업보로 살아간다고 믿는 사람에게는 만일 도법이란 스님이 그렇게 훌륭한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오늘 이 순간이 거짓말을 한다고 하면 도법스님은 즉각 거짓말쟁이가 될 뿐이라고 하면서 이것은 결코 전생의 업보가 아니라 현재의 행위일 따름이라는 설명을 할 수 있다고 하였다. 전생에 아무리 좋은 선업을 지었다고 하여도 지금 이 순간에 거짓말을 하면 그 사람은 거짓말쟁이가 될 뿐이고 또 전생에 죄를 많이 지었더라도 좋은 일을 하면 좋은 인간이 되는 것이라고 하였다. 인간은 본인이 마음을 먹고 행위 하는 대로 본인이 뜻하는 삶이 창조되도록 하는 즉, 삶의 창조주라고 하였다.

본인이 하는 대로 이루어진다고 하는 것이 부처님이 우리에게 준 최고의 선물이라고 하였다. 오만한 행동을 하면 즉각 오만한 인간, 평화롭게 하면 평화로운 인간, 겸손하게 하면 겸손한 인간 등 인간이 행위를 하는 대로 즉각 그런 인간이 된다고 하였다. 너의 삶의 주인은 신이나 전생의 업보도 아니고 사주팔자 소관이 아니고 바로 현재의 자기 자신이라고 하면서 이를 천상천하 유아독존, 본래면목 등으로 표현하였다고 다시 강조하였다.

발원문의 내용은 인간은 그런 것이라고 압축하여 설명하였고 그런 행위를 할 때 즉각적으로 그런 인간이 되는 것을 설명하였다고 하였다. 다시 말하면 겸손하게 상대하면 나는 겸손한 인간이 되고 오만하게 상대하면 오만한 인간이 되는 것을 예시한 것이라고 하였다. 발원문의 내용은 단단히 마음먹고 정신 바짝 차리고 하면 즉각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이라고 다시 한 번 강조하였다.

이렇게 할 때 해탈 열반의 삶은 평화롭게 자유롭게 하는 순간 이루어진다고 하였다. 불교에서 영험은 행위 하는 대로 즉시즉시 나타나는 것이라고 하였다. 다음에 어떻게 하겠다든가 다음에 보자고 하거나 죽어서 보자고 하는 것은 전혀 믿을 수 없고 엉터리라고 하면서 불교는 현재 이 자리에서 즉각 증명이 되는 것이라고 하였다. 현재 검증된 것, 증명된 것 말고 다른 것은 없다고 하였다. 이것은 알아야 될 것을 제대로 알고 안 것을 실천한다면 즉각 나타나는 것이라고 하였다. 행위 하는 대로 되는 것이 인간이고 그것을 본래 부처라고 한다고 하면서 우리 모두 본래 부처라는 사실을 깊이 탐구하고 행위 하는 대로 그런 인간이 되므로 전력투구하여 부처로 살 것을 당부하고 이렇게 하는 것이 불교수행이고 참선이라고 하면서 법문을 마무리 하였다.

정태권  tgjeong@kmo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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