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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은 일체중생을 나의 어머니라고 인식하는데서 시작한다수행은 내일이 아닌 오늘 지금부터 시작하라

부전선원(선원장: 안국스님)이 운영하는 한국참선불교대학원에서 티베트하우스코리아 원장인 텐진남카스님은 2019년 10월 1일(화) ‘성불과 불도, 지혜바라밀과 방편바라밀’이란 주제로 법문을 하였다. 이하는 이날 행한 텐진남카스님의 법문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참선불교대학원 강의를 마치고 텐진남카스님과 자리를 함께 한 수강생들

텐진남카스님은 먼저 불법승삼보에 귀의하고 부처와 불도, 불교의 핵심인 지혜바라밀과 방편바라밀 순으로 법문을 시작하겠다고 하면서 말문을 열었다.

1. 부처란 무엇인가 그리고 해탈에 이르는 단계 5도

불자인 우리들이 삼귀의 중 하나인 ‘부처님께 귀의합니다.’라고 할 때 그 부처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면서 부처는 우리의 목적지라고 설명하였다. 다시 말하면 불교는 다른 종교와 달리 나 자신이 불교를 배우고 이때 생기는 지혜를 바탕으로 수행을 하여 부처가 되는 것이 목적이고 특징이라고 하였다. 한국의 불자들이 서로 인사할 때 ‘성불하십시오.’라고 말하는 것은 좋은 풍속과 문화라고 하면서 그것은 첫째 나와 남 누구든지 성불할 수 있있고 둘째 누구든지 성불하기를 바라기 때문에 이렇게 말하는 것이라고 그 의미를 부여하였다. 그러기에 우리는 성불하는 과정을 알아야 하고 그것을 실천하여야 된다고 강조하였다.

부처의 특징은 여러 가지 있지만 요약하면 일체법을 아는 지혜와 모든 장애에서 벗어난 상태 두 가지로 볼 수 있다고 하였다. 부처는 반야경에 따르면 크게 색신(色身)과 법신(法身) 두 가지로 표현할 수 있고 또 색신에는 보신(報身)과 화신(化身), 법신에는 자성법신(自性法身)과 지혜법신(智慧法身) 등 모두 4가지의 몸으로 표현할 수 있는데 어떻게 이런 4가지 몸이 가능한 것인지는 인명학에 잘 기술되어 있다고 설명하였다.

우리 모두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것, 그것을 바라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은 4성제를 바탕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하면서 그것은 도성제(道聖諦)와 멸성제(滅聖諦)라고 하였다. 도는 길이고 제는 성스러운 것이고 멸은 소멸되었다 즉 장애를 없앴다는 것이라면서 이 멸제와 도제를 이해하지 못하면 부처를 이해할 수 없다고 하였다.

도제는 해탈과 깨달음에 가는 길이며 누구든지 이 길을 가기 위해서는 자량도(資糧道), 가행도(加行道), 견도(見道), 수도(修道), 무학도(無學道) 등 5도의 과정을 거쳐가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이 중 견도, 수도, 무학도가 실제의 도제이며 자량도와 가행도는 도제의 예비단계라고 하였다. 무학도는 해탈에 대하여 배울 것이 없다는 것이며 해탈을 증득하면 무학도라며 해탈과 무학도는 동시에 일어나며 또 해탈은 모든 번뇌에서 벗어나는 것 즉, 윤회 자체에서 벗어나는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멸제는 과거형으로 ‘번뇌가 소멸되었다’ 혹은 ‘번뇌를 없앴다’는 의미이며 이것은 견도부터 시작하여 멸제가 된다고 하였다. 번뇌는 아주 많은데 그 번뇌 숫자만큼 도제와 멸제가 있다고 하였다. 견도(見道)에서 여러 가지 번뇌를 없애고 수도(修道)에서도 여러 가지 번뇌를 없애다가 수도의 마지막 단계에서 금강삼매로 제일 미세한 번뇌까지 삼계의 모든 번뇌를 제거하면 멸제를 증득하게 되는데 이를 해탈이라 한다고 설명하였다.

도제를 통하여 해탈과 깨달음으로 갈 수 있는 이유는 3가지인데 그 첫째 이유는 ‘누구든지 노력만하면 성불할 수 있다.’라고 하면서 그것은 여래장경과 미륵보살의 저작 5법 중 하나인 ‘대승보성론’에 나오는 ‘모든 중생은 여래장(如來藏)을 가지고 있다.' 혹은 '일체 중생은 불성(佛性)을 가지고 있다.’를 근거로 제시하였다. 여기서 여래장은 불성(佛性)과 같은 의미인데 즉, 성(性)과 장(藏)을 씨앗으로 보면 된다고 하였다. 즉, 우리는 부처의 씨앗을 가지고 있어서 땅에 심은 씨앗이 조건이 주어지면 나중에 열매를 맺듯이 우리도 노력이라는 조건만 있으면 누구든지 성불할 수 있다고 하였다. 이것은 ‘과거 모든 부처도 수행 정진하여 붇다가 된 것이다.’라면서 노력하지 않으면 중생 그대로 있게 된다고 하였다.

둘째 이유는 ‘중생의 마음이 명료(청정)하다. 그 마음 자체가 밝음이다.’라고 하였다. 마음 즉 식의 본질이 밝음이고 그 역할은 인식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본래 마음이 빛이어서 밝지만 장애가 있으면 밝지 않다고 하였다. 장애를 가진 마음이 지혜법신으로 변하면 성불하게 되는데 그것은 마음의 본질이 밝음이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셋째 이유는 마음에 붙어 있는 모든 장애는 영원한 것이 아닌 모두 일시적인 것이어서 객진번뇌(客塵煩惱)란 말처럼 손님처럼 잠시 들어온 것에 불과하다고 하였다. 우리 마음에 무량한 장애가 있지만 이 장애는 어떤 조건이 있어서 발생한 것이므로 마음을 장애로부터 분리하면 성불한다고 강조하였다. 따라서 성불이란 모든 장애에서 벗어난 상태라고 하였다. 이 3가지 논리로 우리는 모두 성불할 수 있다고 강조하였는데 이것은 반야경, 여래장경, 대승보성론 등에서 설하고 있다고 설명하였다.

장애에는 번뇌와 번뇌가 남긴 습기 등 2가지가 있으며 이 번뇌를 분류하면 오견(五見)과 비오견(非五見, 오견: 유신견, 변견, 사견, 견취견, 계금취견, 비오견: 탐, 진, 치, 만, 의), 근본번뇌와 수번뇌 등 여러 가지가 있지만 요약하면 탐진치(貪瞋癡) 3독이며 이 탐진 즉, 탐욕과 성냄의 뿌리는 아집(我執)이며 이 아집으로 인하여 탐욕과 성냄이 생겨서 이것으로 업을 짓고 윤회를 한다고 설명하였다.

그런데 이 번뇌는 일시적이어서 조건이 있으면 없앨 수 있다면서 그 조건이란 무아(無我)를 인식하는 식으로 실제로 있다고 인식하는 아집을 대체하는 것 즉, 아(我)는 공하다고 인식하는 식으로 교체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현재 상태는 우리의 아집이 너무 강하여 아집의 노예로 살고 있지만 부처님의 말씀대로 계속 노력하고 수행하여 실상은 공하다고 하는 무아를 점차 인식하여 계속 정진하면 아공(我空)이 점점 커져서 결국은 아집을 이기게 된다고 설명하였다.

그런데 이 아집과 아공의 실제 싸움은 견도(見道)부터 시작한다고 하였다. 이 견도에는 아집을 끊는 16찰나가 있다고 하였다. 수도(修道)에서도 아집을 계속 끊어 가다가 마지막 금강삼매에서 유종인 제일 미세한 아집이 소멸되면 해탈이라고 하였다. 이렇게 아집이 소멸된 상태가 멸제라고 부연하였다.

마음의 장애, 특히 아집은 아주 강하고 교묘하게 보이지만 실상은 결코 강하지 못하고 타당성이 없어 아공과의 싸움에서는 반드시 지게 되는데 이것을 인명학에서는 아공의 인식으로 아집을 제거한다고 가르치고 있다고 설명하였다.

유(有)의 흐름, 아집의 흐름이 끊어지는 것이 해탈이며 그래서 번뇌가 남긴 모든 장애를 벗어난 상태를 깨달음이며 자성법신이라고 하면서 모든 장애가 없어지면 마음의 빛이 완전히 드러나서 일체의 법을 알 수 있게 된다고 하였다. 이 일체지에 대하여 초기경전에서는 간단히 설명하고 있지만 반야경에서는 깊게 설명하고 있다고 하였다. 부처가 일체의 법을 알고 있다는 것을 이렇게 논리로써 판단할 수 있다고 하였다.

색신에서 불지(佛地)에만 머물러 있는 부처를 보신이라고 하고 중생구제하기 위하여 인연이 있는 곳에 나타나는 부처를 화신이라고 하면서 이 화신은 중생, 우주, 인간, 천신, 동물, 마귀, 집, 선박, 바다의 섬 등 어느 곳이든지 혹은 어떤 존재로도 나타난다고 하였다.

부처는 지혜, 자비, 원력 등 3가지를 특징으로 한다면서 이를 모두 구족한 분이 부처라고 하였다. 그러기에 지혜가 있어도 자비가 없으면 소용이 없고 지혜와 자비가 있더라도 원력이 없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고 하였다. 이와 같은 부처는 대승보성론의 ‘해가 뜨면 10개의 깨끗한 그릇에는 각각 해가 떠서 10개의 해가 뜬다.’를 예로 들면서 우리 마음에 부처에 대한 깨끗한 신심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나 항상 우리에게 나타난다고 하였다.

2. 해탈을 넘어 깨달음으로 방편바라밀과 지혜바라밀

다음으로 방편바라밀의 방편에는 출리심(出離心)과 보리심(菩提心)이 있다면서 먼저 출리심에 대하여 ‘출’은 출발한다는 뜻인데 어디에서 출발하여 어디로 가는가는 사성제의 고제(苦諦)와 집제(集諦)에서 출발하여 도제와 멸제로 가는 것이라고 하였다. 도제와 멸제는 해탈에 관한 성스러운 진리이고 고제와 집제는 윤회의 실상에 관한 진리라고 하였다.

고제는 삼계가 모두 고통임을 말하는 것인데 삼계 중 욕계는 고통의 세계이나 색계와 무색계는 고통은 없지만 고통의 본질은 그대로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삼계 자체의 본질이 고통이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수(受)는 고, 락, 불고불락 등 3수로 이것도 전부 고제이며 3업인 선업, 악업, 중업(불선불악업)도 역시 고제라고 하였다.

고에는 고고(苦苦), 괴고(壞苦), 행고(行苦) 등 3고가 있으며 출리심은 바로 고에서 출발하므로 고를 알아야 한다며 이 출리심은 해탈의 문이라고 하였다. 고고는 세속에서 일반적으로 아는 고통이고 괴고는 변하는 고통으로 예를 들면 우리가 누리고 있는 행복도 끝나면 오는 고통이라고 하였다. 행고는 행하는 고통, 생주이멸하면서 생기는 고통, 번뇌에 의하여 끌고 가는 고통, 아집에 의한 성냄과 탐욕으로 업을 짓고 이 업에 의하여 다시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받는 고통이라고 하면서 이것이 윤회의 고통이라고 하였다.

출리심에서 제일 중요한 것이 바로 이 행고이며 해탈하고 싶다는 것은 바로 행고에서 해탈하고 싶다는 것이라고 하였다. 나머지 고통인 고고와 괴고는 축생이나 기타 동물들도 벗어나고자 하는 고통이라고 설명하였다.

이런 행고도 힌두교에서도 가르치지만 힌두교에서는 행고에서 벗어나는 목적을 욕계에서 벗어나 색계, 혹은 무색계의 천(天)에 태어나는 것에 두지만 불교에서는 이것과 달리 즉, 소승의 가르침에서는 해탈이 목적이고 대승의 가르침은 깨달음이 목적이라고 하였다. 삼계 자체도 윤회하므로 이 삼계에서 출발하는 것이 출리심이라고 하였다.

선업은 누구나 지을 수 있지만 선업만으로 해탈이 불가능하다고 하면서 인간, 아수라, 천 등의 3선도는 선업의 결과이며 또 욕계에서도 9공덕을 얻을 수 있고 또 선정삼매로 업을 지으면 색계와 무색계, 다시 말하면 출리심이 없이 지관(止觀) 즉, 사마타와 위빠사나로 수행하면 색계와 무색계에 태어난고 하였다. 그렇지만 이렇게 색계 혹은 무색계와 같은 천의 세계에 태어난 존재는 한없는 즐거움으로 살아가다가 그 선업이 끝나게 되면 반드시 지옥에 떨어지게 되어 있다고 하면서 업과 윤회의 무서움을 강조하였다.

불자의 목적은 해탈과 깨달음이므로 출발이 중요하다고 역설하였다. 그래서 출리심은 고통에서 벗어나겠다는 것뿐만 아니라 삼계 윤회 전체에서 벗어나겠다는 것이라고 다시 강조하였다. 출리심은 해탈의 문에 와 있는 것이며 이것은 방편일 뿐이므로 무아를 인식하여야 한다면서 그것을 인식하는 과정에는 문사수(聞思修)가 있다고 설명하였다.

도를 닦을 때에는 무아를 어떻게 인식하여야 하는가에 대하여 먼저 문(聞)은 ‘들음’을 말하며 무아의 뜻을 부처 혹은 스님의 말을 듣거나 경을 읽어서 이해가 되는 단순한 지혜를 말하며, 사(思)는 논리를 통하여 확실하게 하는 이해하는 비량(比量)으로 깊이 인식하는 지혜를 말하고, 또 수(修)는 사(思)를 깊이 하면 집중력이 생기는데 이 사마타에서 생기는 지혜를 말한다고 하였다.

자량도에 상중하의 3단계가 있고 가행도에 난(煖), 정(頂), 인(忍), 세제일법(世第一法) 4단계가 있으며 세제일법을 지나면 견도가 된다고 하면서 자량도의 하단계에서 가행도의 마지막 단계인 세제일법까지는 출리심을 바탕으로 무아를 인식하면서 가는데 그것은 문사수(聞思修)로 하는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문사수의 수(修) 다음에는 위빠사나인 관(觀)이고 수단계에서는 지(止)만 해당하는 경우도 있으나 자량도에서 가행도로 넘어가는 것은 지(사마타)에서 관(위빠사나)으로 수행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가행도 4단계는 관(위빠사나)이며 그리고 자량도의 하단계부터 가행도의 세제일법까지가 분별심이고 견도(見道)에 도달하면 성자(聖者)라고 한다고 하였고 견도에서는 공성을 이해하는 현량(現量)을 얻어 분별심에서 무분별심으로 변한다고 하였다. 견도에는 8인 8지의 16찰라가 있는데 8인에서 인은 번뇌와 직접 싸운다는 것으로 이 의미는 무아를 인식하는 자체가 아집과의 싸움이라고 설명하였다. 견도의 마지막 단계가 견소단(見所斷)인데 이것은 견도에서의 마지막 번뇌를 벗어나는 것이라고 하였다.

수도(修道)에서는 출리심 바탕으로 무아를 인식하여 윤회를 벗어나기 위하여 금강삼매로 마지막 미세번뇌를 벗어나면 해탈하게 된다고 하였다. 해탈 정도는 출리심에 해당하며 윤회에서 벗어나는 것인데 반하여 지혜바라밀의 지혜는 무아의 지혜라고 설명하였다.

그런데 대승에서 말하는 보리심은 일체중생을 구제하기 위해서 깨달음을 바라는 것이라고 하였다. 번뇌만 제거되면 해탈인데 이것은 대승차원에서는 보면 아주 사소한 것이라고 하였다. 내가 깨달음을 성취하여야 한다고 인식하는 것이 보리심인데 목적은 중생구제이지만 한평생 닦아도 성취 못하는 경우가 있다고 하였다. 그래서 깨달음에 이르는 것이 한 평생, 일백 생, 일천 생, 일만 생이 걸린다 하더라도 보리심을 증득하기 위하여서는 계속 정진하여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석가모니부처는 3무량겁 동안 중생을 위해서 공덕을 짓고 성불하였다며 우리가 원하는 것이 만약 성불이라면 거기에 맞게 우리도 보리심을 위하여 준비를 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이런 중생구제는 단순히 말로 하는 정도의 의미가 아니고 하나밖에 없는 자식에 대한 엄마의 마음과 같이 사랑과 애정으로 하여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이런 보리심을 갖기 위해서는 7인과(因果) 방법과 자타(自他) 바꾸기 방법이 있다고 하면서 먼저 7인과 방법에는 (1) 일체중생이 ‘나의 어머니’라고 인식하는 것. (2) 그 은혜를 기억하기, (3) 그 은혜에 보답하기, (4) 중생을 향한 자애심, (5) 중생에 대한 연민심(대비심), (6) 중생에 대하여 내가 책임을 지겠다는 수승한 마음(확고한 결심) 등 6 원인과 그 결과인 (7) 보리심으로 ‘나는 성불해야 한다.’가 있다고 하였다.

자타바꾸기 방법은 나와 남을 바꾸는 것으로 '지금까지는 나를 제일 소중하게 생각하여 왔는데 지금부터는 남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나를 가볍게 보겠다.’라는 방법이라고 하였다. 따라서 지금 이 순간부터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나에 대한 집착을 조금씩 줄여서 남을 위한 보리심을 키워가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그런데 이런 실천은 금방 듣고 바로 행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많은 시간이 소요되는 것이기 때문에 끊임없는 정진을 부탁하였다.

3. 결어와 질의응답

그래서 텐진남카스님은 결론을 ‘첫째 부처님 법을 실천해야 한다두 번째로 오늘 지금부터 시작하여야 한다. 왜냐 나는 무상하여 죽게 되는데 그 죽음이 언제 올지 모르니까 지금부터 수행하여야 한다. 세 번째는 법에 어긋난 행위를 하지 말아야 한다.’라고 하면서 명상수행이란 이런 것들을 하는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마지막으로 수강생들의 질문을 받았는데 첫째 다른 사람과 불교 교리를 얘기할 때 다른 사람의 말에 마음이 다치게 될 때 그것에 어떻게 대처하면 좋을까에 대하여 텐진남카스님은 여기 스님의 절에 평소에 자주 와서 질문하고 공부하여야 한다고 답변하였다.

죽을 때 악업이나 선업이 어떤 역할을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하여 지옥은 처음부터 미리 만들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악업이 있으면 그때 지옥이 생기고 마찬가지로 선업을 지으면 그때 천도 생기는 것이라고 하였다. 우리는 죽을 때 버려야 하는 이 몸을 위하여 살생하고 있는데 이 살생의 업에 따라 지옥에서 고통을 받게 된다고 주의를 주었다. 욕계에서 성냄이 있으면 큰 악업을 짓는 것이고 탐욕도 마찬가지라고 하면서 그런데 초보자에게 이것을 바로 버리라고 하면 불가능하기에 조금씩 줄여 나가도록 노력하여야 한다고 하였다. 성냄과 탐욕도 내가 아니고 잠시 온 손님이니 쫓아낼 수 있고 아집이 현재는 나의 주인공인 것 같지만 쫓아낼 수 있는데 이것은 아공을 인식을 하여 계속 정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였다.

사바중생의 악인을 어떻게 구제하면 좋으냐는 질문에 대하여서는 자비를 베푸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하였다. 한 가족에서 부부가 자식을 사랑과 애정으로 보살피면 그 집안의 분위기 좋듯이 이 도량에서도 자비명상으로 자비를 키우면 이 불씨가 점점 커져서 이 마을, 도시, 대한민국까지 평화가 가능한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자비는 부처의 뿌리로 도를 닫는데 처음, 중간, 마지막에서도 똑같이 중요하다고 하면서 중생을 향한 자비가 없으면 보리심을 일으키지 못한다고 강조하였다. 자비가 클수록 성불의 속도가 빨라진다고 하면서 자비명상하면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을 바꿀 수 있다고 하면서 자비는 남을 위해서 하지만 결국은 자기를 위해서 하는 것이라고 다시 한 번 강조하였다. 이런 자비는 전 세계에 영향을 주는데 자비를 바탕으로 결국은 성불하는 것이라면서 법문을 마쳤다.

정태권  tgjeong@kmo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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