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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두선에서 깨달음이란 무엇인가정이란 무심의 상태

전국선원수좌원 부회장이고 참선 지도자협회 간화선 원장인 정과스님은 2019년 4월 30일(화) 부전선원에서 참선아카데미 지도사 2급과정 수강생들에게 ‘깨달음이란 무엇인가’란 주제로 법문을 하였다. 이하는 이날 행한 정과스님의 법문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참석한 수강생들과 정과스님

먼저 정과스님은 정(定) 혹은 선정(禪定)이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가만히 참선하는 어느 스님을 저승사자가 찾을 수 없었던 예와 일반인과 똑같이 움직이고 활동하는 동산양개스님을 토지신이 볼 수 없다는 예를 통하여 정이란 가만히 앉아 있는 것만이 아니라 마음이 ‘무심(無心)의 상태, 즉 망념이 없는 상태’에 있는 것이 바로 정이라고 정의하였다.

정과스님은 스스로를 출가한지 30년이 조금 지난 간화선수행자라고 칭하고 간화선은 화두를 의심하여 깨달음에 이르고자 하는 수행법이며 여기서 깨달음이란 무지와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자유를 누리고자 하는 것이라고 설명하였다. 오늘날 간화선 수행자는 여러 가지로 구박을 받고 있는데 그 하나는 간화선이 현재의 바쁜 생활에 별다른 지혜를 제공하고 있지 못하다는 말이 있고 다른 하나는 간화선이 현실과는 상관없는 1,000년전 남송시대의 관념을 얘기하는데 그것은 삶에 지친 지금사람들에게 전혀 도움이 되지 않은 알아들을 수 없는 자기들끼리의 얘기라는 험담이 있다고 소개하였다.

당나라 때 마조 스님이 허공에 손가락으로 원을 그려놓고 ‘이 원에 들어가도 30방, 원 밖에 있어도 30방인데 어떻게 하면 맞지 않겠는가?’하고 물었을 때 마조스님의 말한 의미를 파악하여야 하지만 그 질문은 먹고 사는 것하고 전혀 관계없는 엉뚱한 얘기이고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얘기로 풀 수도 없으니까 그런 험담이 나온다고 그 배경을 설명하였다.

선수행에서 화두를 풀어 설명하는 것은 절대적인 금기 사항인데 그 이유는 화두수행은 알 수 없는 것을 의심하고, 의심하고, 또 의심하여 몰입하여 깨달음에 이르게 하는 과정인데 그것을 풀어 설명하면 아무 소용이 없는 지식만 하나 늘어 날 뿐이며 의심할 동기를 없애는 것이기 때문이고 또 말로 이해한 것은 소용이 없고 끝내는 자기가 스스로 체득하여야 하는 것이기에 그 전에 말로 설명하는 것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강조하였다.

하지만 정과스님은 그 금기에서 벗어나 설명을 하겠다고 하면서 마조스님의 말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초선정을 알아야 한다고 하였다. 하나의 대상에 집중하여 혹은 모든 것을 내려놓고 수행을 하다보면 만나게 되는 첫 번째 선정 상태가 초선정이며 초선정에서는 고요와 멈춤, 내가 없음, 광대한 순전함, 활홀경, 궁극성, 청정한 성스러움 등을 경험하게 되는데 많은 사람들은 이것을 신과의 합일로 이해하는데 부처님은 초선정 뿐만 아니라 8단계의 선정을 설하였다고 설명하였다. 이 초선정에서 좀 더 수행이 진전이 되면 내가 곧 우주이고 우주가 곧 나라는 경험을 하게 되는데 이것은 자기가 어디에나 다 있는 것, 마치 공기가 컵 안에 있고 의자 밑에도 있고 그 모든 곳에 있듯이 자기가 어느 곳에나 있다는 경험을 한 사람은 마조스님의 30방 법문을 이해할 수 있다고 하였다.

즉, ‘나는 이미 원에 있고 동시에 원에 밖에 있고 나는 없는 곳이 다 있으며 나는 갈 곳이 없는데 그것은 가고자 하는 그 곳에 내가 이미 가 있으니까.’라는 것으로 마조스님의 답을 대신하였다.

정과스님은 화두풀이가 금기이지만 때로는 화두를 설명하여 좀 이해시키려고 노력하겠다고 하면서 부처님도 가르침은 하나하나 설명하였다는 말로 화두 풀이에 대한 자신의 행위를 변명하였다.

현대에 있어서 다툼과 갈등 분노의 원인이 되는 탐욕심은 예전 간화선 시대와 같거나 아니면 오히려 더 강하다고 진단하면서 간화선은 이 시대에 쓸모없는 것이 아니라 꼭 필요한 약방문이라고 강조하였다.

우리가 사는 세계는 사바세계로서 고와 같이 살아가야 하는 세계이기 때문에 괴로움, 아픔 분노, 어리석음, 두려움 없는 곳 즉, 극락이나 천당으로 가고자 하며 죽어서라도 그런 곳에 태어나고 싶어 한다고 실상을 말하고 그런데 불교에서 말하는 자유는 극락, 천당이 필요로 하지 않은 자유라고 그 의미를 부여하였다.

선공부를 통하여 자기의 참성품에 눈뜨면 극락, 천당조차도 자기의 무지에서 비롯된 갈망이라고 하였다. 무지를 버리면 갈망이 사라지고 갈망이 사라지면 극락, 천당이 없다고 하며 그것이 부처님 가르침이라고 설명하였다. 그 예로 간화선 수행법을 확립한 대혜종고스님이 천도재 부탁을 받고 행한 영가법문 즉, ‘오직 마음이 정토임을 깨닫고 자성이 미타임을 알라. 그러면 이승이든 저승이든 가는 곳마다 즐거울 것이다.’를 들었다. 정토란 깨끗한 곳이란 뜻이지만 그것은 위생상태가 청결하다는 것이 아니라 다툼, 욕심, 분노, 화 등이 사라진 상태를 의미한다고 하면서 대혜스님의 말씀은 ‘정토를 어디 다른 곳에서 찾지 말고 어느 곳으로 가든지 마음이 청정하면 그곳이 정토임을 알라.’라는 뜻이라고 설명하였다. 자성의 성품에서 두려움이 사라지면 가능하다고 하였다.

부처님은 ‘일체 생명이 나와 같은 불성을 가지고 있다.’고 하셨지만 그 말씀이 아니더라도 참선공부를 진득하게 하다보면 자성이 미타라는 사실을 스스로 알게 된다고 하였다. 열반경에 보면 소잡는 백정인 '광핵도아'라는 사람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진리를 깨닫고서 자기도 이들 부처님들의 중의 하나라고 말을 하였다고 하면서 수행은 바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믿는 것에서 시작한다고 그 예를 들었다.

삶에서 오는 스트레스로 미국에서는 명상 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으며 우리나라 강남에도 500개 명상센터가 있다고 명상의 붐을 말하고 명상은 '마음의 길들이기'이며 우리는 생각이 자기인 줄 알고 그 생각에 끌려 다니는 것인데 명상은 생각을 지켜보는 것이고 지켜보면 생각이 사라지고 사라지면 그것이 더 이상 나를 괴롭히지 않는 것이니 마음을 쉬게 하는 것이 명상수행이라고 설명하였다.

간화선은 화두에 집중하여 의식작용이 저절로 끊어지게 하는 것이며 또 수행할 때에는 동기와 목표가 분명해야 수행이 잘 된다고 하였다. 수행을 할 때에는 두 가지가 필요한 데 그 하나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나를 자유롭게 해 줄 수 있는 진리라는 믿음, 부처님 가름침 대로 하면 삶의 고뇌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어야 하고 다른 하나는 이 수행으로 모든 사람을 고통을 없어지기를 바라는 원력을 함께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그 예로 참선을 10년 동안 한 수행자가 진제스님에게 통 진전이 없다며 참선수행은 상근기만 가능한지를 질문하였을 때 진제스님은 상근기가 따로 있지 않고 자기가 어떤 원을 가지고 하는지 돌아보라고 하며 대원을 세우고 공부하여야 한다고 말씀하셨다고 소개하였다.

마음을 굳게 먹고 참선하더라도 좋은 소식이 곧 오지 않고 많은 시간이 걸릴 때 소득이 없다고 포기 하지 말고 꾸준히 정진하며 자투리 시간이라도 수행하여 그 수행을 일상 생활화할 것을 당부하였다.

정과스님은 어느 한 신도한테 받은 이산혜언선사 발원문에 나오는 ‘보고 듣고 맛을 보므로 한량없는 죄를 짓는다고 하였는데 왜 죄를 짓는 것인가?’라는 질문이 15년 동안 숙제가 되었다고 자신의 경험을 소개하였다.

이것에 대한 답으로 법구경에 나오는 내용 ‘바이야여, 보이는 것을 보기만 하고 들리는 것을 듣기만 하고 느끼는 것을 느끼기만 하고 또 인식하는 것을 인식하기만 하다면 그대는 그것과 함께 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과 함께 하지 않을 때 거기에는 그대가 없다, 거기에 그대가 없을 때 그대에게는 이 세상도 없고 저 세상도 없다. 이것이 고통의 소멸이다.’를 인용하였다. 그런데 우리는 대상을 보는 볼 때 동시에 마음이 따라가서 마음이 시비분별 하는 것 즉, 옳다 그르다 깨끗하다 더럽다 성스럽다 추하다 등은 대상에 대한 본질이 아니고 대상에 대한 우리들의 평가에 불과하다고 말하며 우리의 평가가 부실하고 근거가 없기에 ‘평가하지 말라’, ‘옳고 그름을 따지지 말라’라는 것인데 우리는 살아 온 습 때문에 평가하고 판단하고 취사선택하고 몸으로 행동한다며 ‘보고 듣고 맛보는 것’ 그 자체는 죄가 되지 않으나 우리의 분별심, 시비심 등으로 평가, 판단, 취사선택한 후 이뤄지는 행동 때문에 죄가 된다고 설명하였다.

그러면 바보처럼 살아야 하는가 역시 이것에 대한 답으로 야보스님의 ‘대나무 그림자 돌계단을 쓸어도 먼지는 일지 않고 (竹影掃階塵不動), 달빛이 수면을 뚫고 바닥에 닿아도 물결이 일어나지 않네 (月輪穿沼水無痕)’의 선시로 대신하였다.

전등록에 나오는 덕산스님의 ‘오늘 저녁에 묻지 말라. 말을 거는 자에게 30방을 때리겠다. 이때 한 스님이 나와 절을 하려는데 대사가 얼른 때리니 스님이 말했다. 저는 아직 아무 말도 묻지 안했는데 화상께서 어찌하여 저를 때리십니까? 그대는 어디 곳 사람인가? 신라국 사람입니다. 그대가 배에 오르기 전에 30방을 때리겠다.’라는 공안을 소개하며 아무 것도 묻지 안했는데 왜 맞았는가 또 배에 채 오르기도 전에 맞아야한다고 하였는데 그것은 무엇인가? 덕산스님의 뜻은 분별심, 의도를 일으키지 말라는 것인데 일어났을 때 이미 무엇을 하겠다는 생각이 일어난 순간이며 생각이 일어난 순간 그것은 어긋난 것이기에 맞아야하는 것이고 부처님의 가르침을 더 배우겠다고 마음먹고 배를 타려고 한 것은 바로 구하고자 마음이 있기에 어긋나 있는 것이기에 배타기 전에 맞아야 한다고 한 뜻이라고 풀이하였다.

결국 덕산스님의 말은 ‘도 수행자는 도를 구하지도 말라 그리고 구하지 않음이 평상심이고 본래의 마음이다.’라고 설명하였다. 아무 것도 구하지 않은 상태가 '도', 아무것도 마음 속으로 기대하거나 바라지 않은 것이 '도'이며 그렇게 하면 자유가 무한히 열리고 두려움이 없어진다고 설명하였다. 또 초기경전을 인용하여 세상의 온갖 두려움은 그것이 무엇이든지 깨끗하지 못한 말과 행동과 생각으로 생긴다고 하였다.

즉, 마음이 정토임을 깨닫고, 자성이 미타임을 알면 두려움이 없으니 부처님의 가르침이 축복이구나 하는 마음을 가져달라고 당부하였다.

선가귀감의 ‘뭐를 구하지 말라. 본래의 참마음이 부처님의 마음. 그 마음을 그대로 지키면 된다. 말, 행동, 생각이 깨끗하면 그것이 그대로 부처님의 마음이다.’를 인용하며 의도하지 말라고 힘주어 말하였고 의도적인 생각, 행위만이 업과를 만들지만 무심의 경지에서 한 행위는 업과가 따르지 않는다고 하면서, 그렇기에 공부는 다른 것이 아니고 본래의 청정한 자리로 돌아가서 자유로운 삶을 즐기는 것이라고 강조하였다.

불교적 자유로움을 고려말 백운스님의 임종계를 예로 들었다. 불교의 자유는 죽음에 의하여서도 훼손되지 않은 자유라고 설명하였다.

선은 마음의 실상을 바로보고 해결하는 곧바로 가는 경절문이고 고통이나 두려움은 그릇된 생각, 집착을 버림으로써 즉, 마음이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울 때 가능하다고 하였다.

여러분이 아직도 인생의 기로에서 방황하고 있다면 그것은 전생의 붓다의 가르침을 한 번도 마주하지 않았거나 받아드리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진단하고 자기의 삶을 부처님의 가르침에 투영하며 자신을 되돌아보고 어둠에서 밝음으로 나가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일체가 마음의 작용임을 모르는 사람은 화난 이유를 밖에 두는데 화난 이유를 자기에게 찾아야 하며 좋아하고 미워하는 마음이 자기 안에 있으니 그것만 벗어내면 된다고 하였다.

실참 수행에서 화두는 의심하는 것인데 화두가 없는 사람은 ‘이뭐고?’로 해보자고 하였다. 사실은 나에 대하여 모르고 어디에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있으며 자기에 대하여 모르니까 이를 의심하여 보자고 하며, 내가 수많은 고통의 제일의 원인이 되고 내가 고통이며 화의 원인이니 나를 끌고 다니는 나를 의심하여 봐야 한다고 하였다. 화두는 ‘지식을 통하여 답을 찾는 것이 아니고 또 논리적으로 찾는 것이 아니다.’며 그러므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이뭐고?’ 하나에 마음을 집중하여 의심하여 보자고 하면서 실참 수행에 들어갔다.

정태권  tgjeong@kmo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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