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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담화 허은정님의 스리랑카 불교성지순례 제4화

우담화 허은정님이 2017년 2월 18일부터 2월 24일까지 전국교사불자연합회 회원으로 스리랑카 불교성지순례 여행에 동참하여 견문한 내용을 싣는다. 오늘은 제4회로 스리랑카 넷째 날의 불교성지를 순례기를 게재한다. 이하는 허은정님의 글이다.

스리랑카 사찰순례지(구글 지도에 표기)

2017. 2. 21 (화)

★ 담불라 석굴사원(Dambulla Cave Temple)

담불라 사원은 현지 이름으로 ‘랑기리 담블라 라자마하 비하라ʼ로 불리는데 그 의미는 ‘담볼라 황금바위의 대왕 사원ʼ이란 뜻이다. 담불라 석굴 사원은 BC 1세기 무렵 싱할라 왕조 제19대 왕 와타가마니 아바야가 건설한 사원으로 남인도의 침략을 받은 아바야 왕은 당시 수도 아누라다푸라에서 쫓겨나 66km 떨어진 담불라로 도망쳤다. 그때 왕은 이곳에서 수행하던 승려로 부터 융숭한 대접을 받았는데 14년 뒤 수도를 되찾고 감사의 뜻으로 석굴을 만들어 승려들에게 기증했다고 한다.

담불라 석굴사원의 와불

첫 번째 석굴 안에는 거대한 열반에 든 와불이 14m로 조성되어 있는데 와불 전체는 황금색으로 칠해져 있고 부처님 발바닥은 붉은색으로 물을 들이고 둥근 꽃모양의 화려한 문양을 넣었다.

스리랑카에서는 불상의 발바닥을 이처럼 붉게 물들이는데 싱할라 왕조의 시조인 위자야가 기원전 6세기 인도로부터 이곳 스리랑카에 왔을 때 그의 손 발바닥이 붉었다는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그러니 붓다의 저 붉은 발바닥 화려한 꽃문양은 싱할라 민족을 붓다와 연결해주는 상징인 셈이다. 담불라라는 이곳의 지명은 “물이 솟아나는 바위”라는 뜻이라고 한다.

담불라 석굴사원 참배 후 계단에 있는 일행들

두 번째 석굴은 폭이 약 52m, 길이 25m, 높이 6m에 달하고 56개의 불상이 모셔져 있다. 이곳에서 가장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석굴내벽을 빈틈없이 채우고 있는 화려한 벽화이다. 내용은 부처님 생애와 스리랑카의 역사적 사실이 묘사되어 있다.

이곳에는 총 5개의 석굴이 있다. 나머지 3개도 4~15세기까지 외세로부터 호국불심으로 나라를 구하고자 조성된 사원이다. 인도의 아잔타 동굴처럼 자연암벽을 인공으로 파서 만든 게 아니라 자연동굴에 불상을 안치하여 만든 것이다. 암벽에 홈을 파서 빗물이 스며들지 못하게 하고 바닥이나 천정을 고르게 다듬어서 하얀 옻칠을 하고 그 위에 그림을 그려 나갔다.

불상을 포함하여 벽면도 전부 채색을 했으니 그 선명하고 아름다운 색조는 지금도 변하지 않고 있는데 이것을 미술용어로 프레스코 기법이라고 한다. 석굴 5개에 현재 총 168개의 불상이 있으며 “골든록”이란 별명도 있으며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되어 있다.

★ 알루비하라 사원(Aluvihara)

세계최초의 패엽경은 인도가 아닌 이곳 스리랑카 알루비하라 사원에서 구전으로 전승되던 삼장을 영구보전하기 위하여 간행된 것이다. 패엽경(貝葉經)은 나뭇잎 패다라에 송곳이나 깔끝 등을 이용하여 글자를 새긴 뒤 먹물을 들려서 만든 불교의 경전을 말한다. 이곳에서는 야자수 잎을 말려서 결대로 잘라내어 만들었다.

패엽경의 모습

당시 500여명의 비구승들이 삼장(三藏)을 결집(結集)하는데 7년 동안에 4회의 결집을 거쳐서 경(經) 율(律) 논(論) 삼장이 완성되었다. 이 사원에는 패엽경을 제작하기 위한 동굴이 14곳이 있었는데 지금까지 온전히 전하는 곳은 두 곳 뿐이다.

이곳 사원에서 특별한 스님을 만났다. 주지스님 ‘난다 나타바’ 이분은 우리나라 동국대학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고 서울 제기동 법화정사에서 20년간 한국생활을 했다고 자기소개를 하는데 우리나라 말을 유창하게 구사하셨다.

난다 나타바 스님의 알루비하라 사원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는 일행들
패엽경을 재현하는 난다스님

이곳에도 다른 곳의 대탑보다는 작지만 아담하고 예쁘장한 둥근 원형 사리탑이 있다. 사원 내 큰 바위들이 여러 가지 모양으로 많이 있는데, 그 바위에 석굴을 파고 부처님 입불, 좌불, 와불을 모셔두고 있다.

이 나라는 모든 사원에 가면 꽃공양이 생활화 되어 있어 꽃을 들고 다니는 사람과 쟁반에 담아 들고 가는 사람을 많이 볼 수 있다. 또한 불상 앞에는 항상 꽃이 수북이 쌓여 있다.

‘난다 나타바ʼ 스님의 설명을 듣고 참배한 후 패엽경을 만드는 과정을 보여주셨다. 직접 만드신 패엽경을 대표로 배한욱 전국회장님께 드렸다.

우리들이 산 패엽경의 내용을 난다 스님께 여쭈니, 우리말로 설명하여 주셨다.

 

세존이시고, 거룩하신 아라한이시며 완전히 깨달은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마왕을 물리치고, 부처님은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깨달으셨다. 그것을 알게 된 수 많은 신들이 기뻐하셨다. 이러한 부처님의 진심 뜻으로 좋지 않은 것은 사라지고, 좋은 일이 생기도록 기원합니다.
난다 나타바스님과 함께

기념 촬영을 마친 후 한명씩 종을 3번씩 쳤다. 정성을 모아 힘 있게 쳤다. 종소리는 은은하게 길게 울려 퍼지며 그 여운이 일행 가슴 가슴마다 닿았다.

★ 페라데니아 식물원(Botanical garden of peradenia)

식물원 내에 있는 식당에서 중식 후 식물원 관람했다. 캔디 시내에서 6km 남쪽 마하웰리 강변에 위치한 이 식물원은 약 60만㎡(18만평)의 넓이에 현재 4,000여종 식물들이 아름답게 배열되어 있다. 동양 최대의 이 식물원을 다 둘러보려면 6시간 이상 걸리는데 우리 일행은 중요한 곳 몇 군데만 둘러보았다.

열대수 정원
줄지어 선 종려나무

입구에서 조금 가니 대나무 숲이 우거져 있다. 어찌나 큰지 왕대중의 왕대다. 보통 대나무보다 5~6배 크기이고 키는 25m 이상이다. 페라데니아 식물원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식물들이 몇 있다. 그중 벤자민 고무나무(Java willow Tree)는 잔디 밭 가운데 있는데 200년 나이에 500평 가까운 면적의 그늘을 만들 수 있다.

잔디광장을 가로질러 폭신폭신한 천연 잔디 감촉을 느끼며 걸어가는 맛도 좋다. 이때까지 불교유적이나 사원 등을 열심히 살펴보다가 이곳에 오니 또 다른 세계가 펼쳐진다.

가장 큰 벤자민 나무

룸비니 동산의 무우수 나무 아래에서 부처님이 탄생했다는 그 무우수 나무를 이곳에서 보니 반가웠다.  커피나무, 계피나무, 극낙조나무, 코코넛나무, 아몬드나무.. 가이드 설명에 다 외울 수도 없다. 이상한 열매가 주렁주렁 달린 나무도 보고 줄지어선 종려나무 입구 쪽으로 나오면 잘 가꾸어진 열대수 정원 또한 대단하다.

맑은 공기와 푸른 나무들이 잘 가꾸어진 잔디밭을 밟았더니 몸과 마음이 상쾌하다. 캔디에 있는 불치사로 향했다.

무우수

★ 캔디(Kandy)

캔디라는 이름은 산악지역이라는 뜻의 캔다 우다라타(Kanda Udarata)에서 따온 말이다. 스리랑카 제2의 도시이다. 콜롬보 동북쪽 약 90km, 해발 500m에 건설된 도시로 1815년 영국에 이양되기 전까지 300 여년간 포르투갈과 네덜란드의 지배를 받았기 때문에 유럽의 느낌을 받을 수 있는 도시이다. 인구는 약 80만명이며 15~18세기까지 싱할라 왕조의 수도였다.

캔디시 거리
퀸즈 호텔

이곳 도로는 중앙선이 없고 신호등도 없는 대략 2차선 도로이다. 그러다 보니 모든 차들이 제멋대로 경주하듯 달린다. 오토바이를 개조해 만든 삼륜개인택시 이름은 툭툭이다. 이 툭툭이도 제한 속도가 없는지 자동차와 버스 사이를 질주를 한다.  무질서 속의 질서라고 해야 하나... 그러나 이렇게 해도 사고가 나지 않은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퀸즈 호텔은 1895년 영국인들에 의해 지어졌는데 4층으로 된 고풍스럽고 우아한 서양식 건물로 하얀 백색으로 칠해져 있다. 스리랑카의 최초 호텔로 시설도 좋고 깨끗하여 특급호텔이다. 이 호텔에 머물렀던 유명인사가 많다. 엘리자베스 여왕 2세, 최초의 영국 여자 총리 마가렛 대처, 미국의 소설가 마크 트웨인(Mark Twain), 영국의 소설가 데이비드 로렌스(D.H. Lawrence) 등이라고 한다.

★ 불치사(佛齒寺)(Dalada Maligawa)

사원의 본래 이름은 달라다 말리가와(Dalada Maligawa)이지만 부처님 송곳니 치아사리를 모셨다 하여 불치사라 더 잘 알려져 있는 곳이다.

스리랑카 국보 제1호인 불치사 전경

대반열반경에 보면 기원전 543년 인도 쿠시나가르에서 석가모니께서 열반하신 후 다비를 하였다. 그리고 나온 사리를 8등분하여 당시의 강대국들과 부처님과 직접 인연이 있는 나라에 차례로 배분하였다. 늦게 도착한 나라를 위해 사리 담았던 항아리와 다비한 재 그리고 송곳니를 배분 받게 되는데 그 때 인도 동부의 강력한 군주국이었던 칼랑카 왕국은 이 송곳니를 배분 받게 되었다.

헤마말라’ 공주가 머리에 치아사리를 모시고 남편 ‘수단타’와 함께 스리랑카에 전했다
불치가 모셔진 전강의 입구

칼랑카 왕국은 불치사를 세워 잘 보존 해오다 서기 362년 대 기근과 이교도의 침입으로 더이상 불치의 보관이 어렵게 되자 칼랑카의 왕은 꿈에 계시를 받고 딸 헤마말라 공주를 시켜 성스러운 치아 사리를 쪽 머리에 감추어 배를 타고 스리랑카 ‘아누라다푸라’에 오게 되었다.

치아사리가 있는 함

치아사리가 여러 곳을 옮겨 다니다가(왕이 옮길 때마다 불치를 옮기므로) 마지막으로 이곳 캔디의 불치사에 보관하게 되었다. 지금 건물은 분홍빛 벽에 붉은 기와를 얹은 전형적인 싱할라 건축 양식의 팔각형전각이 아름답게 균형을 이루고 있는 건물이다.

늦은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입장하고 있다. 참배를 하려면 상의는 흰옷을 입어야 하며 하의는 상관없다. 신발과 모자를 벗는 것은 기본 예의이다. 나는 전체 흰색 옷을 입었고 꽃공양 준비하고 들어갔다.

양쪽과 뒤쪽 벽에는 16구의 불상이 좌불로 계시고 벽에는 부처님 탄생 설화그림과 부처님 치아사리가 스리랑카로 온 경위가 불화로 그려져 있다.

입구에 수문장 모양으로 커다란 상아가 반원을 그리며 좌우 3개씩 서 있는데 그 안에 불치가 모셔져 있다. 치아 사리가 모셔진 법당 내부의 문은 공양을 올리는 때인 하루 세 번 열리지만 일반인들은 바깥에서 그 과정을 지켜볼 수 있을 뿐이다. 

불치사 내 국제법당
예불드리는 일행들

국제 법당에 우리나라 붓다도 모셔져 있어서 반가웠다. 많은 관광객이 빠져 나간 후 우리 일행은 국제법당 한쪽 구석에서 따로 예불을 봤다. 저녁 예불 시간에 맞추어 주민들이 들어오기 시작하지만 우리들은 모두가 벅찬 환희심으로 정성껏 예불을 드렸다. 일행들 중 저절로 눈물을 적시기도 했었다.

불치사 참배 후 스리랑카 민속공연을 구경하러 공연장으로 출발했다. 캔디시내 도로는 좁고 사람이 다니는 인도도 두 세 사람 겨우 피할 좁은 길이다. 차량들은 기어가고 퇴근시간인지 인파로 북적된다.

휴대폰 보급은 잘 되었는지 안 가진 사람이 없다. 사거리와 삼거리 등 교통 요충지나 사람이 많이 다니는 곳에는 길가에 큰 좌불을 자주 볼 수 있는데 아침 일찍 직장에 나가는 사람들이 사원에 못가니 길가다 기도하기 위함이라고 한다. 역시 불교국가 임을 보여준다.

★ 민속공연

시내 가운데 캔디 호수가 있어 경치가 참 아름답다. 이 호수는 1812년 당시의 왕이자 싱할라 왕국의 마지막 왕이였던 ‘라자싱하’에 의해 만들어진 인공 호수이다.

캔디 시민은 물론 여행자들에도 좋은 사색과 낭만의 공간으로 사랑받고 있다. 그곳 호수가에 위치한 캔디문화센터에서 전통 민속공연을 구경했다.

민속공연의 한 장면
21일 숙소인 캔디 얼 리전스 호텔(Earl and Regency Hotel)

피리 부는 남자, 북치는 사람, 전통악사들과 춤추는 댄서들, 귀청을 찢을 것 같은 음악소리에 반쯤 혼이 나간다. 남자무희 6명이 나와 스리랑카 민속고유 춤을 추고 공중제비는 물론 팽이처럼 빙글빙글 도는데 매우 빠르게 돌아간다. 보는 사람도 따라서 어지럽다. 여자 6명이 나와 농촌의 추수하는 모습을 재현하는데 키를 각각 하나씩 들고 알곡을 고르는 춤을 춘다. 사자로 분장한 2명이 나와 코믹한 장면과 재롱을 피우고 한사람이 여러 개의 쟁반 돌리기도 한다. 한 시간 가까이 민속공연은 그런대로 볼만했다.

정태권  tgjeong@kmo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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