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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담화 허은정님의 스리랑카 불교성지순례 제2화

우담화 허은정님이 2017년 2월 18일부터 2월 24일까지 전국교사불자연합회 회원으로 스리랑카 불교성지순례 여행에 동참하여 견문한 내용을 싣는다. 오늘은 제2회로 스리랑카 첫째 날과 둘째 날의 불교성지 순례기를 게재한다. 이하는 허은정님의 글이다.

2017. 2. 18 (토)

여행이란 즐거움과 동시에 무언가를 새롭게 배우는 계기가 되어 좋다. 특히 불자인 나에게 부처님의 나라 스리랑카를 여행한다는 것은 초기불교의 가르침을 배우고 부처님의 발자취를 느낄 수 있는 멋진 여행이 될 것 같아 미리 스리랑카에 대해 공부도 하면서 출발하는 날을 기다려 왔다.

출발하는 날이 사랑하는 조카 동원이가 예쁘고 지혜로운 교대 후배 교사와 창원에서 결혼하는 날이기도 하다. 결혼식에 참석하는 것은 즐거움이지만, 결혼식을 마치고 창원에서 부산까지 와서 비행기 제 시간에 타야한다는 생각은 마음과 몸을 바쁘게 한다. 하지만 이런 마음을 아는 딸이 김해공항까지 자가용으로 배웅해주어 시간 내 도착하여 무사히 예약한 비행기를 탑승할 수 있었다.

일행들(전국교사불자연합회원)은 오후 7시 인천공항 3층 A카운터에서 만나기로 되어 있었다. 대한항공 조종사로 근무하는 아들 덕택에 비행기 탑승권은 아들이 해결해 주었지만, 좌석이 비워야 탑승되는 조건 때문에 내심 걱정이 되기도 했는데, 일행들보다 먼저 승차표를 받고 짐 가방도 부쳤다.

혹여 잘못되어 출발하는데 지장이 생길까봐 노심초사 했던 모든 것이 부처님의 가피인지 순조롭게 풀려 불교성지 스리랑카에 무사히 출발하게 되어 그 심정은 공항 안에서 덩실 춤이라도 추라면 추고 싶을 정도로 기뻤다. 가이드 핀투(Pintu)님 인솔로 배한욱 회장 비롯하여 26명의 교사불자와 함께 콜롬보행 KE473을 탑승했다.

비행기 내에서 ‘법화경 여래수량품 자아게’ 를 한자로 사경한 후 내일을 위하여 눈을 붙이고 자면서 아침부터 쌓였던 피로도 풀었다.

2017. 2. 19 (일)

인천공항에서 스리랑카로 떠난 지 약 9시간이 걸려 수도 콜롬보에 7시 53분 착륙했다.

공항에는 현지 가이드가 마중 나와 계셨다. 전용버스 로얄 홀러데이즈(Royal Holidays)에서 운전기사와 조수 한명 그리고 우리와 행동을 같이 할 가이드 수지와(Sujiwa)님 소개가 있었다. 첫인상이 육상선수, 경찰관 하신 분답게 건강하시고 활발하시다. 우리나라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기에 좋은 만남이라고 생각 들었고 스리랑카의 여행을 더욱 기대하게 해주었다.

야자수가 많고 해변이 아름다운 제헤링 블루(Jehering Blue) 호텔에서 조식. 바람은 따뜻하고 날씨가 맑아서 기분 좋게 불교성지 순례가 시작되었다.

첫 번째 수도였던 ‘아누라다푸라’로 향했다. 네곰보라는 작은 도시를 지나는데 십자가가 달린 교회인지 성당인지는 모르겠지만 큰 건물이 많이 보였다. 스리랑카는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의 지배를 480년간 받아서 기독교도 일찍 들어와 전파되어서 네곰보는 기독교 세가 강한 곳이다. 그리고 영어도 잘한다. 민족은 싱할라족 70%, 타밀족 15%, 이슬람족 7%이고, 싱할라족과 타밀족의 26년간 내전으로 많은 사람들이 사상되고 또한 많은 것이 퇴보했다고 한다. (불교 70%, 힌두교 15%, 이슬람교 7%, 기독교 7%)

스리랑카 국기

스리랑카의 국기는 다문화, 다종교, 다민족의 화합을 상징하는 진한 노랑색 바탕에 왼쪽부터 무슬림을 상징하는 초록색 줄무늬, 힌두교 타밀족을 상징하는 주황색 줄무늬, 갈색의 사각형 문양 속에 각 모서리에 보리수 잎이 있고 가운데는 칼을 든 사자모양이 그려져 있다. 여기서 보리수 잎은 불교, 칼은 나라의 주권, 사자는 용맹한 싱할라족을 의미한다. 바탕인 갈색은 소수 민족인 유럽계 혼혈 버거족을 상징한다.

★ 아누라다푸라(Anuradhapura)

스리랑카 지도(구글지도에서 발췌)

스리랑카 최고의 유적들이 모여 있는 이곳은 콜롬보에서 약 200km 떨어진 북동쪽에 있다. 기원전 377년부터 서기 1017년까지 아누라다푸라는 스리랑카 최대 도시였으며 불교의 중심지였다. 12세기 가장 번성했다고 하는 크메르 왕국의 앙코르 톰의 인구가 10만 명으로 당시 세계 최대의 도시였다고 하는데, 그 보다도 1세기 전 아누라다푸라의 인구는 앙코르톰 인구보다 다섯 배나 많았다고 한다. 대도시로 발달할 수 있었던 것은 싱할라 왕족 최초로 불교를 받아들인 데바남피아 티사(Devanampia Tissa)왕(BC207~287)에 의해 도시의 기본적인 시설이 갖추어졌기 때문에 고대 대도시로 발전하였으며, 판두카바야 왕이 아누라다푸라를 수도로 정했다고 한다. 이 도시는 이교도, 외국인 등이 쉽게 접근할 수 없도록 기획하여 만든 도시이며 약 1400년 동안 정치적, 종교적 수도로서 명맥을 유지하였다. 지금도 이용하고 있는 관계시설이나 상·하수도는 그 당시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하니 대단한 문명을 가졌던 나라임을 알 수 있었다.

★ 이수루무니아 사원(Isurumuniya Vihara)

포쿠나(연못)에서 손과 발을 씻고 몸과 마음을 정결하게 한 후, 언덕 위 다고바(탑)를 시계방향으로 탑돌이 하고 보리수를 참배하고 바위 속에 조성 된 법당(바위사원)을 참배하는 동선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와 같은 참배의 동선은 스리랑카 모든 불교사원에 공통 적용되는 순서이기도 하다.

이수루무니아 사원 입구에서
스리랑카에 최초로 불교를 전한 마힌다스님
사랑의 여인상

기원전 3세기 불교 전래 후 세워진 스리랑카 최초의 사원이다. 일명 록 템플(Rock Temple) 즉, 바위사원으로 불린다. 조그만 연못이 있고 뒤쪽 바위에는 두 마리 코끼리의 머리 부분을 조각해 두었으며 돌계단마다(17단) 주먹을 불끈 쥔 사람 모양의 조각상이 3명씩 부조 되어 있다.

사원에 들어갈 때는 신발과 모자는 필히 벗고 들어가야 한다. 또한 윗옷은 가능한 흰색을 입을 것을 권유한다. 입구에 신발을 벗어두고 맨발로 입장 했다.

이 사원에서 출토된 문화재들을 전시하고 있는 작은 박물관이 있었다. 왕이 앉았던 돌 의자와 왕족상 등이 있는데, 가장 유명한 문화재는 ‘사랑의 연인상ʼ 이다. 옛날 이곳이 살리야왕자(스리랑카를 통일시킨 영웅, 도투게무누 대왕의 아들)와 집시여인 아소카말라 간의 애틋한 사랑을 묘사해 놓은 것이다.

★ 스리마하 보리수 사원(Sri Maha Bodhi)

석가모니께서 인도 보드가야 보리수 아래에서 성도하셨다. 아쇼카왕이 삿된 우상이라는 명분으로 그 보리수를 잘라 불태웠다고 한다. 그러자 기적이 일어나 두 개의 보리수가 솟아올라 잎을 피웠고 그루터기에 향유를 뿌리니 본래대로 나무가 다시 소생하였다고 한다.

보리수의 모습

이에 죄책감을 느낀 아쇼카왕은 보리수를 보호하고, 딸 상카미타 비구니에게 스리랑카에 전법활동으로 갈 때 가져가라 명해 보리수가 이곳에 오자 스리랑카 왕은 정성껏 모시고 사원을 조성하였다고 한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보리수는 2300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 생명을 이어가고 있으며 인도 보드가야에 있는 본 보리수가 죽자 이곳 곁가지를 가져다 심어서 현재 인도 보드가야 마하보디 사원(Maha-bodhi Temple) 대탑(52m)에 있는 그 나무이다.

지금 이곳의 보리수는 가지 하나가 옆으로 누워있는데 군데군데 금칠을 한철 기둥을 받쳐 두고 있는 작은 보리수가 원래의 보리수이다. 이 크지도 않은 나뭇가지가 2300년을 지탱하여 살아왔다니 대단한 나무임이 틀림없다. 그래서 더욱 많은 세계의 불자들이 찾아오는 곳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19세기에 코끼리로부터 나무를 보호하기 위하여 돌 축대를 쌓았으며 1966년 에 금제 울타리를 쳤다. 울타리 안에는 들어갈 수가 없고 순례자들은 주변을 돌며 합장배례를 했다.

★ 마하 비하라 사원터(Maha Vihara)

기둥 위에 승려들의 요사채가 있었다.(기둥 1,600개) 가장 높은 곳 9층에는 아라한과를 이루신 스님이 계셨다. 승려들의 회의 장소로 쓰인 어셈블리홀과 5세기 때 3,000명이 공양을 하던 공양 터 흔적이 남아있다. 스리랑카 상좌부 불교의 총 본산이다.

마하 비하라 사원터
돌그릇

★ 르완웰리 대탑(Ruwanweli Seya dagoba)

기원전 140년 두투게무누 대왕(Dutugemunu BC161-137)은 집권 19년 되는 해에 타밀의 엘라라(Elara)를 무찌르고 아누라다푸라를 탈환한 기념으로 이 탑을 조성하기 시작하였다. 아누라다푸라의 유적 가운데 스리마하보디 다음 성소로 숭앙되는 곳이다. 이 불탑의 조성은 기원전 2세기 두투게무누 대왕에 의해 시작되었으나 완성을 보지 못하고 그의 후계자 동생 사다팃사(Saddaa Tissa BC137-119)왕이 완성 시켰다. 원래 높이는 110m였으나 지금은 55m이고, 지름은 180m, 원형 위에 네모난 상륜부에 원추형으로 뾰족한 첨탑이 있다. 첨탑에 꽃혀 있는 크리스탈 보석은 미얀마에서 기증했다고 한다. 대탑의 기단은 동서남북 각각 100마리 코끼리 머리로 빙둘러 총 400마리가 호위하고 있으며 대탑을 중앙에 두고 소탑 4개가 사방에 서있다.

르완렐리 대탑의 모습

르완웰리 대 탑쪽으로 걷고 있을 때, 10살 정도 되는 남자 어린이는 부모님과 함께 대탑을 참배하고 오는 중 마주보게 되었다. 3m 밖에서부터 미소를 지으며 내 앞으로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반갑게 악수한 후 엄마 손 잡고 가면서 웃으며 계속 손을 흔들었다. 나도 같이 흔들며 헤어지기 아쉬웠다. 처음 본 어린이 이지만 그 천진난만하고 아름다운 미소와 친절함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같은데 더욱 아쉬운 것은 함께 사진으로 그 천진한 미소를 담아두지 못한 점도 후회로 남게 될 줄 몰랐다.

라이아라(Raiara)호텔에서 뷔페식 중식 후 미힌탈레로 향했다.

미힌탈레 정상을 앞두고 나무 밑 평평한 곳에 모든 불자들은 흰 옷을 입으셨고, 담마시허스님(신도에게 여쭈어 알았다.)께서는 일산 아래 의자에 앉으셔서 법문하고 계셨다. 말씀은 알아듣지 못하지만 장엄하고 거룩한 분위기를 느껴 잠시 앉아 법회에 동참하였다.

법회 중 명상시간 때는 함께 선정에 들기도 했다.  부처님 당시 설법하는 모습을 본적이 없지만, 그 당시 법회가 이런 모습이었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으로 가슴 벅차 오름을 느꼈다.

법회 모습

★ 미힌탈레(Mihintale) 및 마힌다 사리탑

마우리아 왕조의 3대 아쇼카 대왕(BC266-232)은 형제들을 죽이고 스스로 황제가 되었고, 이어 정복전쟁을 일으켜 인도 통일의 대업을 달성하였으나 무력정치의 허무함을 느끼게 되면서 불교로 개종하였고 무력에 의한 정치가 아니라 진리의 정치 즉 다르마의 통치를 선포하였다.

마힌탈레

불교전파를 위해 외국으로 아홉 차례 걸쳐 전도사를 파견하였다. 아쇼카왕 아들 마힌다 스님이 이곳 스리랑카에 최초로 불교를 전파하였다. ‘마힌탈레’라는 지명의 뜻은 ‘마힌다의 언덕ʼ이라는 뜻이다. 그 당시에는 석굴 68개, 스님 11,000명이 이곳에서 수행했다고 한다.

낮은 산등성이 따라 곳곳에 흩어져 있는 석주와 큰 규모를 자랑하는 건물의 잔해들. 승당과 병원, 목욕탕, 불탑 등의 흔적만 남아있다. 스님들의 샤워 장소를 보니 지금도 사자 입에서 물이 나와 큰 석조에 모이도록 설계되어 있다. 병원터가 있는데 석주만 우뚝 서 있고 네모반듯한 돌이 허리 높이에 침대처럼 있는 곳은 아마 수술대 역할을 하지 않았나 싶다.

아누라다푸라(Anuradhapura)의 유적지를 다니다 보면 궁전이나 사원들에 줄지어선 돌기둥들을 많이 볼 수 있는데 그것은 스리랑카 특유의 건축양식 때문이기도 하다. 비가 많이 오는 열대기후 속에서 작은 곤충들이나 동물들과 습기를 막기 위해 돌기둥을 세우고 건물을 지었기 때문이다.

오래 걸으면 다리가 불편한 나를 동료의 부축을 받고 계단을 올라가는 모습을 보고 스님과 함께 가시는 거사님께서 “You can do” 하셨고, 스님은 “May you have the Buddha's Grace” (부처님 가피를 바랍니다.) 하시며 용기를 주셔서 기분도 좋고 힘도 솟았다. 이런 모습은 스리랑카인들의 특유의 여유로움과 배려에서 나오는 따뜻한 마음을 볼 수 있었다.

제트윙 레이크 호텔

하루 일정을 마치고 제트윙 레이크 호텔(Jetwing Lake Hotel) 204호에 이효춘 선생님과 같은 방을 사용하게 되었다. 처음 뵙지만 항상 웃는 모습의 대보살님이셨다. 더 늦기 전에 수영하기 위해서 저녁식사도 마다하고 이효춘 선생님과 같이 수영하였다. 전기불 아래 수영한 것도 아름다운 추억이 될 것이다. 수영하고 나니 종일토록 강행군하여 쌓인 피로가 풀린 듯 했다.

정태권  tgjeong@kmo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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