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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 자녀들의 부처님 가피허은정님의 불교 신행 이야기

어릴 때부터 어머니 따라 절에 가는 것을 좋아했지만 1971년 음력 7월6일 28세부터 스스로의 신앙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임신 중이라서 먼 곳은 여행하기 힘들어 남편과 의논하여 범어사 암자에 가기로 했다.

칠월 칠석 전날인줄도 모르고 금강암에 갔었다. 불자들이 많이 오셨는데 그중에 아는 분이 계셨다. 미정이 할머니께 “왜 사람들이 많습니까?” “선생님, 칠석날인줄 모르고 왔나?”하는 순간 수명장수하고 지혜로운 아기 낳을 수 있도록 기도하라고 부처님께서 나를 오라고 부르신 것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에 자연유산과 태어나서 잃은 슬픔이 컸기에 이번에는 수명장수하고 사회에 도움 되는 아기 낳을 것이라고 결심했다. 그래서 스님께 인사드리고 기도 올렸다. ‘관세음보살‘ 정근을 많이 하였다. 이날부터 관세음보살은 내 입과 마음에서 떠나지 않았다.

입덧이 심했는데 저녁 공양부터 입덧이 없어지고 맛있게 먹었다. 나의 기도가 부처님 마음을 움직였는지 큰 딸은 목에 탯줄 세 개를 감고 태어났다. 부처님 가피로 태어난 아기여서 그런지 다재다능하고 공부도 뛰어나게 잘했으나 겸손한 성품을 지녀서 친구들이 좋아해서 반장도 여러 번 했다. 지금은 약사로서 사회에 도움 되는 일을 하고 있다.

부처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장녀를 절에 잘 데리고 다녔고 일념으로 ‘관세음보살’ 하는 것이 큰 즐거움이었다. 신앙생활 처음은 관음정근이며 절하는 수행이었다. 자주 관세음보살 꿈을 꾸며 즐거운 나날을 보내며 장녀 키우는 재미와 학교생활을 즐겁게 하였다.

2년 후에는 아기를 가지기 전부터 ‘수명장수하고 지혜로운 아들을 보내주시면 사회에 도움이 되는 사람으로 힘껏 교육시키겠습니다.’ 부처님 전에 발원하고 기도했다. 나의 바람대로 튼튼한 아들이 태어났다. 부처님 가피로 태어난 아이답게 착한 모범생이며 친구들에게 인기가 있어서 딸아이처럼 반장을 여러 번 했다.

고 3학년 때 아들은 공군사군학교에 가서 조종사가 되겠다고 했지만, 온 가족이 반대하여 공군사관학교 진학을 포기했다. 일반대학 시험 때도 조종사가 되고 싶어 항공대학교 운항과를 꼭 가려고 하여, 아들의 뜻을 존중하여 허락했다. 운항과는 공군사관학교와 신체검사법이 꼭 같아서 신체조건 10가지는 해당 되지 못하면 입학을 할 수 없었다.

예를 들어 시력1.0 이하면 학업성적이 아무리 우수해도 안 된다. 아들은 원서접수 후 안과에 가서 시력 검사하니 왼쪽 눈이 0.8이라는 것을 알고는 실망하여 공부도 안하고 이미 불합격된 사람처럼 지낼 때, 나는 “부처님께서 네가 조종사로서 나라에 도움이 되면 합격될 것이고, 다른 일 하는 것이 도움 된다면 불합격 될 것이다. 어쨌든 실력을 쌓아 두어야 공대를 가더라도 합격할 것이다.” 하며 공부하도록 용기를 주며, 퇴근 후는 관음사 저녁 예불에 꼭 참석한 후 집으로 갔다.

그 당시 지현스님께서 입시기도로 하루에 “관세음보살보문품 21번 독송하라고 하셨다. 출퇴근 때 운전하면서 암송, 오후 시간 있을 때는 교실에서 또 저녁예불 때, 관세음보살보문품을 열심히 독송했다. 엄마는 열심히 기도하고, 아들의 마음은 안정되어 마무리 공부를 열심히 하였다.

한국 항공대학 학과 시험 칠 때와 공군사관학교 신체검사 때는 남편께서 기도 많이 한 엄마가 따라가야 합격한다고 하셔서 두 곳 다 내가 따라갔다. 신체검사 때는 공군사관학교 근처 절에 있으면서 기도하고 머물렀다.

시력이 조금 나쁜 학생 5명은 눈에 어떤 약을 넣고 현미경으로 세밀하게 시력검사 하였다고 한다. 아들도 왼쪽 눈은 그렇게 한 번 더 검사했다. 입학해서 보니 현미경으로 시력 검사한 학생 중 합격한 학생이 없었고 아들만 합격한 것이다. 아들 자신도 부처님의 가피를 느낀 것이다.

현재 대한항공 부기장이며 내년에 기장될 예정이다. 많은 사람의 안전을 위해 시물레이트 연수 등 실력을 튼튼히 하고 있다. 지금도 매일 같이 자식을 위한 엄마의 기도는 끝이 없다.

아들 낳은 2년 후 아기를 가지기 전부터 ‘세상의 빛이 될 인재를 낳을 것이다.’ 발원하며 기도 한 한 달 후 막내딸을 가졌다. 예정일이 반달정도 지났으므로 의사 선생님의 겁나는 말씀에 의사 지시대로 유도분만을 하여 순산했지만, 급작스럽게 진행되어 하혈이 계속 되었고 지혈이 되지 않아 9시간 넘게 지속되어 생명마저 위독해졌다.

남편은 워낙 학교생활에 성실하여 출근하였으나, 상황이 다급해지자 병원 측에서 남편 연락처를 물었다. 사실대로 말하면 남편이 놀라서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서 너무 급하게 오다가 다칠 것을 우려하여 내 시키는 대로만 말할 것을 간호사에게 다짐받고는 연락처를 알려 드렸다. 나는 “딸이지만 사회의 빛이 될 훌륭한 인재를 낳았으니 수업 마치고 천천히 오시라고 하십시오.” 라고만 말해라고 해 주위를 숙연하게 만들었다.

병원 측이 끝내 포기하고 마지막 방법으로 내 주위에서 단체로 하나님께 기도하며(기독교 병원) 마지막 순간을 기적만 기다릴 때에도 나는 종교적 신념에 바탕을 둔 정신력으로 끝까지 정신을 잃지 않았고 마침내 스스로 상황을 이겨냈다. 지혈이 된 것도 나의 정신력과 부처님 가피였다. 침대에 누워서도 관음정근을 잠시도 쉬지 않았다.

내가 국민학교 4학년 때 집에서 조카가 태어났다. 어머니께서 받으셨고 올케언니가 하혈을 하였다. 당시 경남고등학교에 다니던 오빠가 학교에서 돌아오자 “엄마! 허리를 꼭 묶고 두 다리를 높이 올리세요.”라고 해서 오빠 시킨 대로 하니 지혈이 되었다. 부처님 가피로 정신이 맑았기 때문인지 그때 일이 기억되었다. 나도 어머니께 그렇게 해달라고 부탁했다. 허리끈을 묶고 두 다리를 올린 모습을 본 담당 의사님은 “할머니, 이거 무슨 짓입니까?”하자 “우리 며느리가 이렇게 해서 지혈되었습니다.” “할머니가 아기 많이 받아보셨습니까? 내가 많이 받았겠습니까?”하며 못하게 말렸다. 계속 하혈이 되니 담당의사도 나중에 원망하지 말고 할머니 하고 싶은 대로 해라고 했다. 허리에 끈을 꼭 묶고 두 다리를 올린 후 차차 피가 멈추었다.

나중에 차트를 보고 안 일이지만 그 때 혈압 30이하 피는 몸의1/3 흘렸고 왼쪽 코는 숨을 쉴 수 없었다. 스스로 산소 호흡기를 코에 대어달라고 간호사에게 부탁하여 편하게 호흡하였다. 부처님께서 지켜주실 것이라는 마음 가득했기에 죽음 앞에서도 잘 대처한 것 같았다.

막내 딸은 대학교 입학 시험 두 곳에 합격하는 즐거운 일이 생겼다. 부산 대학교 사대 수학교육학과에 4년 동안 전액 장학금을 받는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했으나, 부처님 은혜에 보답하고 불교 공부를 하기 위해서 동국대학교 의과 대학에 입학하였다.

나의 발원대로 사회에 빛이 될 인물답게, 남에게 친절하고 배려하는 마음이 컸다. 엄마를 위해서 의과대학생일 때부터 뇌분비에 관한 공부를 하며 엄마 병을 연구하였고, 지금도 언니 약사와 함께 부모의 건강을 점검하고 보살핀다.

어린이 불자를 키우기 위해 1986년도부터 2년간 괴정동 사리암 어린이법회에 일요일이 일직인 날 외는 결석 한 번도 하지 않고 대학생 보조선생님(현재 비구니 스님)과 함께 열심히 지도하여 법회 참석인원이 70명 정도였다.

찬불가 대회 및 각종 행사에 참석하여 우수상을 여러 번 받기도 했다. 어린이 법회 지도를 잘 했다고 1988년 12월 17일에 대한불교 어린이 지도자 연합회 회장 조정관 스님으로부터 표창장 (제64호)받기도 했다.

사리암 보수공사로 안전을 위해 어린이 법회가 중단되고, ‘룸비니 어린이 포교원’ 법회를 조선자 선생님을 도와 지도했다.

2006년 2월에 교장으로써 정년퇴임하고 3월부터 관음사에서 ‘놀토학습지도’를 다양한 방법으로 2년간 지도하면서 어린이 포교에 힘썼다.

1994년부터 현재까지 법화경을 정기적으로 법문 듣고 수행하며 포교활동을 하고 있다.

2007년 음력 1월 15일 영산 큰 스님께서 대중 앞에서 나를 법사로 인정하셨다. 오종법사(수지, 독, 송, 해설. 서사) 신앙을 더욱 열심히 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법을 전하는 일을 즐겁게 하며 포교활동을 활발히 하였다.

부처님의 은혜가 너무나 크므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더욱 알고 싶고 여러 사람들에게 부처님 말씀을 전하고 싶어 관음사(당리동소재) 지현큰스님의 뜻을 받들어 교사불자회 자림회를 1989년 창단하고 금강경을 비롯하여 여러 경전 공부를 하게 되어 보람 있는 법회를 정기적으로 하였다. 또 부산불교교육대학 포교사과정1년 경전연구반 2년을 열심히 다니며 친구후배들에게 포교활동을 하였다.

몇 년 전부터 자림회 법회는 한 시간은 지현큰스님 법문 듣고 한 시간은 자비명상 실천을 한다. 그래서 부처님 공부는 주로 법화경(남에게 해설해주는 것이 나에게 큰 공부가 되었다.)과

자비명상 참선 공부이다. 자림회 회장으로써 부산교사불자회와 전국 교사불자회에 협조하여 많은 교사들이 부처님 가르침을 알고 실천하도록 하기 위하여 대법회, 연수회, 수련회등에 적극참여를 권장하였다. 그 공덕으로 2015년 1월23일 대한불교조계종 포교원장 지원스님으로부터 표창장(제2015-022호)을 받았다.

자식들도 이런 나의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실천하는 모습에 대학생 때에도 다른 종교 유혹에 절대로 빠지지 않고 불심으로 생활하였다. 현재까지 큰 어려움 없이 약사, 조종사, 의사로써 전문직으로 남들에게도 사회에 도움 되는 보살행을 하고 있으며 부모에게도 효도를 하는 부처님의 아들, 딸이다. 이 모든 것이 나와 자식들의 신심을 다한 신앙으로 내려주시는 부처님의 크나큰 가피라고 생각한다.

오늘도 한결 같은 마음으로 부처님 앞에서 기도하며 감사드린다.

허은정 기자  udamwha16@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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